소개말

‘색채는 빛의 고통’이라고 괴테가 말했다.

이상득의 시간도 분명 빛의 고통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는 빛의 고통보다 빛의 사랑이 더 느껴진다. 나는 수년간 그의 사진을 보아왔는데 그의 사진에서 늘 느껴지는 것은 사랑의 밝음과 따스함이다. 물론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고통과 사랑은 같은 의미이자 가치다. 그러나 그의 사진에서 사랑이 더 먼저 느껴지는 것은 그의 사진 속에 모성적 영성의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은 얼어붙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배고픈 내 영혼을 배부르게 한다.

그의 사진속에는 어떤 절대적 존재가 있어 언제나 가난한 내 손을 다정히 잡아주고 이끌어준다. 도저희 치유될 수 없는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잠재울 수 없는 내 분노를 잠들게 한다. 여러 가지 인간적인 부족함과 결핍됨마저 채워주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내 존재감을 또렷이 인식시켜준다. 그것은 그의 사진 속에 모성의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미소에는 신비가 있듯이 그의 사진에는 그런 어머니의 미소와 같은 신비가 있다. 나는 그것을 그의 사진이 지닌 영성의 깊이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의 영성의 바탕은 모성이다. 그 모성은 이번 사진전에서 간절한 기다림과 고마움으로 구분된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사진 전체를 관류한다.

그의 영성은 단순함과 고요함으로 나타난다. 그가 찍은 한 그루 나무나 한 줄기 강물이나 숲은 모두 단순하고 고요하다. ‘태초에 고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그 고요가 바로 이런 게 아니었을까하고 생각된다. 그의 빛은 고요의 빛이며, 그의 고요는 맑음의 고요다. 설혹 어둠이 있다 하더라도 그 어둠은 밝음의 고요를 드러내기 위한 어둠이다. 그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함과 번잡함, 떠들석함과 소란스러움 속에 사는 우리 삶을 일시에 고요와 정적과 단순함 속으로 인도해준다.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소음과 광음을 일시에 소멸시켜버리고 아늑한 영성의 자리로 데리고 간다. 그가 우리의 손을 잡고 데리고 간 자리, 그자리는 바로 모태의 자리다.

그렇다. 그의 영성의 바탕은 모성이다.

그 모성은 이번 사진전에서 간절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구현된다. 모성에 대한 그리움, 사랑의 본질에 대한 그리움이 그의 사진 전체를 관류한다. 그의 그리움은 화들짝 놀랍거나 요란스럽거나 무질서하거나 탐욕스럽지 않다. 그의 그리움엔 서정적 햇살이 눈부시다. 엄마 손을 잡고 햇살 번지는 봄의 들길을 걷고 싶어 하는 한 소년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의 사진은 우리가 어른이 되어가는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문득 잊고 있었던 따스한 어머니의 품속이다. 특히 몽골의 자연 속에서 발견한 영성적 모성이 지닌 사랑의 깊이, 그것이 이상득 사진의 본질이다.

시인